일년, 한달, 일초라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무엇도 아닌 무대연출이다. 두 장의 커튼과 조명, 음향효과, 최소한의 소품만을 이용해 한정된 무대 공간을 무한한 공간으로 구성해 내는 연출가의 연출능력은 관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커튼을 통해 무대공간을 자르고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공간이 새롭게 구성됨으로서, 관객들은 단순히 고정된 무대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대 전체를 커튼으로 둘러 안과 밖을 구분하게 하고, 배우들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돌듯 안과 밖을 뱅뱅 도는 장면은 한정된 무대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마치 한 장의 띠지를 꼬아 붙이면 무한한 뫼비우스의 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커튼에 배우가 ㄱ자로 매달려 있고, 다른 배우들이 무대의 바닥을 기며 절벽을..
연극『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 중 하나로, 현대에도 계속해 재탄생되고 있는 작품이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한태숙 연출의『안티고네』는 이러한 원전의 주제의식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는 안티고네와 법의 정의를 주장하는 크레온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소포클레스가『오이디푸스 왕』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인간이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과의 싸움이 아닌, 개인이 스스로 따르기로 결정한 가치를 서로에게 강요하고, 이 때문에 대립하게 된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과 가깝게 보여 진다. 도둑처럼 다가오는 비극적 사건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지금까지 지겹도록 다루어 온 이야기를 반복한다. 세계가 멸망하고 남은 인류의 삶과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간의 투쟁은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써먹었던 플룻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예상 가능하게 진행된다. 하층계급의 반란과 배신, 그리고 권력의 유혹까지. 큰 얼개가 같다면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여야 하는데 그나마도 신통치 못하다. 거대한 열차를 세트로 만든 것은 좋았지만, 그 속의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예카테리나 터널의 전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열차 칸들은 바람과 같이 쑥쑥 지나간다. 기껏 만들었으면 후반부의 커티스과 남궁민수의 대화와 커티스와 윌포드의 대화 분량을 조금 줄이고, 기차만 보여줬어도 충분히 볼거리가 넘쳤을 텐데, 세트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느낌이..
오항녕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메타역사서술로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광해군을 통해 근대주의 역사관의 폐해를 증명하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좀 더 바른 역사서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점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이 길게 언급되지는 않으며, 그것도 머리말과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나머지 분량은 광해군의 시대를 초기와 중기, 말기로 나누어 그 속에서 “광해군 시대 시스템의 작동, 사람들의 비전 또는 욕망, 사건의 우연성”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머리말과 프롤로그에서 오항녕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광해군에 대한 역사서술을 통해 역사서술의 방법을 이야기하려는 책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조선시대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대표적인 폭군으로 평가받았다.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