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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한달, 일초라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연극『푸르른 날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처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극은 여산이 조카이자 딸인 운하의 청첩장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편지를 받은 여산은 30년 전 광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시 대학생이던 민호(여산)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과 친구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자, 이들을 살리기 위해 전남도청으로 향한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급박해지고, 계엄군이 도청을 포위하게 된다. 민호는 친구를 데리고 도청을 빠져나가려고 해지만, 도청을 사수하겠다는 친구 때문에 계엄군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후 민호는 고문을 당하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친구가 간첩이었다고 거짓자백을 한다. 풀려난 민호는 고문후유증과 죄책감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애인과 자신의 아이를..
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이야기-김애란『침묵의 미래』에 대하여 1. 들어가며페미니즘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참 곤욕스럽다. 단순히 번역어로 여성문학, 차별받는 여성을 다룬 문학작품이라 정의 내려버리면 간단할 수도 있겠지만, 페미니즘 문학의 범주를 단순히 ‘여성’이라는 하나의 코드만으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여성’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차별’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박경태는 소수자를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징 때문에 사회의 다른 성원에게 차별을 받으며,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린다. 여성들은 세상의 절반을 이루지만, 남성 또는 같은 여성들에게 차별받고 구분지어지기 때문에 소수자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운동 내에서도 다른 소수자들과의 ..
는 성공신화의 이면에 자리한 기업들의 실패를 조명한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의 성공을 조명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실패에 주목한 책은 처음이었기에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탓인지 책은 그리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전하지는 못한다. 저자는 13개의 한국 기업의 실패를 여러 사례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 실패를 총체적으로 묶어 내는 것은 한국 기업의 구조적 문제이다. NHN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한국기업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는 팽창에 따른 조직의 경직, 혁신의 방향타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한국기업들이 어쩔수 없이 처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삼성처럼 발빠른 추격자 전략을 통해 세계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시장을 이끌만한 리딩 능력이 부족하다..
성 바울로가 1세기 예루살렘에서 보편교회를 설립한 이래,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통합된 종교를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각지로 전파되면서, 지역의 관습과 양식에 따라 조금씩 변용됐고,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문화, 교파, 철학이 발생하게 됐다. 이러한 분화는 교회의 분열을 가지고 오게 됐으며, 결국 1054년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그리스도교는 탄생 이후 3세기 동안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받았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함으로써 제국의 종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때 3개의 대교구가 존재했는데 베드로와 바울로가 순교했던 로마교구와 알렉산드리아 교구, 안티오크 교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중 로마 교구의 주교는 스스로 베드로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실질적 변화는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저자인 고병권은 이 책을 통해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시민과 사회의 인식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다. 이 운동은 단기적이고, 산발적이며, 기생적인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곳에서 진행된 민주주의의 형태는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의 이상향으로 꼽히기도 한다. 저자가 이 운동에 대해 수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이 운동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멋진 신세계를 꿈 꿀만 하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노예제를 기반에 둔 착취적이고 기생적인 체제였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참여를 배제함..
유대교는 성문화된 종교였다. 따라서 이를 해석해내는 문제는 유대교에게 매우 중요했다. 이 때문에 성문 그대로의 신앙과 이를 해석해내는 이성의 대립이 존재했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 필론은 그리스 철학에 기초해 유대교의 교의를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두 문화적 기반인 유대교와 그리스 문화를 일치시키려 한 것이다. 그는 신을 파타고라스가 설명했듯 다양성의 기초인 일자로 해석해냈으며, 플라톤이 바랬던 것처럼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실재시계, 즉 신의 실체에 다가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와 유대교의 결합은 신플라톤주의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연구 등 그리스도교 철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교..
유일신 사상은 이전의 종교와 비교했을 때 혁명적이고, 철학적으로 위력적이다. 바로 보편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소와 사람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됨을 의미한다. 서양세계의 세 주요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이러한 힘을 추동력으로 삼아 발전했다. 하지만 보편성을 띈 강력한 종교인 유일신교도 약점을 가지고 있다. 왜 자신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보호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이다. 만약 인도와 같이 파괴신과 창조신 등 역할을 나눠가진 신들이 존재하는 다신교 신앙이었다면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불행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상정한 종교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 종교가 채택하고 있는 성서가 정녕 신의 말씀이라면 ..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무엇도 아닌 무대연출이다. 두 장의 커튼과 조명, 음향효과, 최소한의 소품만을 이용해 한정된 무대 공간을 무한한 공간으로 구성해 내는 연출가의 연출능력은 관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커튼을 통해 무대공간을 자르고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공간이 새롭게 구성됨으로서, 관객들은 단순히 고정된 무대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대 전체를 커튼으로 둘러 안과 밖을 구분하게 하고, 배우들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돌듯 안과 밖을 뱅뱅 도는 장면은 한정된 무대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마치 한 장의 띠지를 꼬아 붙이면 무한한 뫼비우스의 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커튼에 배우가 ㄱ자로 매달려 있고, 다른 배우들이 무대의 바닥을 기며 절벽을..
연극『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 중 하나로, 현대에도 계속해 재탄생되고 있는 작품이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한태숙 연출의『안티고네』는 이러한 원전의 주제의식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는 안티고네와 법의 정의를 주장하는 크레온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소포클레스가『오이디푸스 왕』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인간이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과의 싸움이 아닌, 개인이 스스로 따르기로 결정한 가치를 서로에게 강요하고, 이 때문에 대립하게 된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과 가깝게 보여 진다. 도둑처럼 다가오는 비극적 사건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