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한달, 일초라도 같이 하지 않는다면
고병권,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르포르타주』, 그린비, 2012 본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실질적 변화는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저자인 고병권은 이 책을 통해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시민과 사회의 인식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다. 이 운동은 단기적이고, 산발적이며, 기생적인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곳에서 진행된 민주주의의 형태는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의 이상향으로 꼽히기도 한다. 저자가 이 운동에 대해 수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이 운동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멋진 신세계를 꿈 꿀만 하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노예제를 기반에 둔 착취적이고 기생적인 체제였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차별적 체제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도 이러한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다. 수많은 목소리와 자신들만의 체제를 만든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자급적인 생산체제는 갖추지 못하면 외부의 물적 지원 없이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월스트리트를 점거하고 있으면서 어떠한 물적 생산도 보여주지 못한다. 다만 들어온 지원 물품을 분배하고, 사람들을 관리하는 또 다른 체제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들의 운동 뒤에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산 체제와 현실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단식투쟁을 하던 점거자의 말처럼 이들은 단지 자신을 조여오는 자본주의의 폭거에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차라리 이들이 단식투쟁을 하던 점거자처럼 금욕적이고 새로운 물적 삶의 양식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이 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 게다가 의미 있는 변화를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지 않았는가. 아테네가 무너진 이유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던 풍족한 물적 토대를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적 토대의 변화 없이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가진 문제점은 이러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홈리스에 대한 거부와 과정상의 여러 문제들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가진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운동은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의 삶의 양식의 변화든, 사회적 양식의 변화든 어떠한 목적이든 추구했어야만 한다. 물론 저자는 촛불시위의 예를 들며 시위 전과 후의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인식변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저자는 답하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변화가 후일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마치 프랑스의 68혁명처럼 말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서는 68혁명과 같은 단순하고 명백한 구호가 들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구호성의 부재는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후일 가져올 변화가 무엇일지 예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니 아예 변화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까지 가능하게 한다.
결국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폭거에 따른 사람들의 거대한 불만이 표출된 사건으로만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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