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한달, 일초라도 같이 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폭력을 막는 마지막 방패, 헌법(김두식, 『헌법의 풍경』, 교양인, 2011) 본문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흔히 오해하듯 국민을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 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데 있습니다(p.10)”
헌법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권력을 제한함으로서 시민을 보호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헌법은 국가 통치의 편의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안위와 보호에 중점을 두고 해석해야 하며, 법의 제정에 있어서도 헌법의 목적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헌법의 조문이 규정하는 기본권들이 서로 상충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조문을 우선시해야하는지가 문제가 되며,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시민의 인식 수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부터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는 각 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적당한 소득분배와 성장을 위해 국가가 경제 주체들을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헌법이 서로 상충된다. 이들 중 어느 것이 한국사회와 시민들에게 더욱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법을 단순히 이미 정해져 있고,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간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바꾸어나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지난 수십 년 간 간통죄가 성립이 되었지만 최근 들어 간통죄는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처벌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맥락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법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성을 유교적 윤리에 따라 국가가 통제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시대에서 개인의 사생활 영역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에서 김두식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법을 절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위험하고, 이러한 태도는 법률가와 정치가들의 전횡에 이용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김두식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예로 들며 법을 이용한 국가의 폭력과 전횡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멀리가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이 제정했던 유신헌법과 국가보안법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신헌법은 시민들의 기본권보다 대통령의 통치권을 우선시한 희대의 악법이다. 유신헌법을 통해 이뤄진 긴급조치 위반자들은 그 당시 감옥에 가거나, 모처로 끌려가 고문당했으며, 그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의 경우에도 휴전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아직도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은 법을 이용한 국가의 폭력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이러한 법 제도 하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이용하는 법률가들을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김두식은 법률가들의 각성과 시민들의 투쟁을 주문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국가의 통제는 날이 갈수록 강화될 것이며, 법은 이를 도와줄 수 있는데, 법률가들이 이를 막고 청지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지만 국가의 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법률가간의 이너서클을 만들어 전관예우 등의 상부상조 문화와 그들의 특권의식이 존재하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성과 이너서클에 매이지 않는 법률가들의 탄생을 바라며, 로스쿨의 도입으로 이러한 법률가들이 양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로스쿨의 비싼 학비 등의 문제도 존재하지만 로스쿨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법률가들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그의 생각에 부정적이다. 로스쿨은 비싼 학비 때문에 부유층 자제들이 상당수 입학할 수 있으며, 이는 현대판 음서로 변질될 수 있을 확률이 더욱 높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투쟁의 경우 구체적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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