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한달, 일초라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어요, 안되요(봉준호, 『설국열차』, 2013) 본문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지금까지 지겹도록 다루어 온 이야기를 반복한다. 세계가 멸망하고 남은 인류의 삶과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간의 투쟁은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써먹었던 플룻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예상 가능하게 진행된다. 하층계급의 반란과 배신, 그리고 권력의 유혹까지. 큰 얼개가 같다면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여야 하는데 그나마도 신통치 못하다.
거대한 열차를 세트로 만든 것은 좋았지만, 그 속의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예카테리나 터널의 전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열차 칸들은 바람과 같이 쑥쑥 지나간다. 기껏 만들었으면 후반부의 커티스과 남궁민수의 대화와 커티스와 윌포드의 대화 분량을 조금 줄이고, 기차만 보여줬어도 충분히 볼거리가 넘쳤을 텐데, 세트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느낌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북극곰의 등장은 관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 영화의 끝에서 열차가 전복하고 달랑 두 사람만이 살아남아 눈이 덮인 대자연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 순간 북극곰이 나타나 자연의 위세를 상징해주는데, 피 튀기는 싸움과 생존경쟁 속에서 남은 게 고작 북극곰이라니 난감하기만 하다. 사실 여기에 대해 좀 더 있어보이게 이야기 한다면 ‘인간의 싸움과 경쟁, 그리고 사상 등은 아무 부질없으며 어떠한 싸움도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고 위대한 자연에 순응하게 된다’정도로 풀어볼 수 있겠다.
어떤 이는 메트릭스와 비교해 봤을 때 열차를 전복시킴으로서 구조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한 발짝 더 나가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리얼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는 것 같다. 차라리 북극곰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 생각에 조금은 동의해 줄 수도 있겠지만 북극곰의 쌩뚱 맞음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냥 설국열차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다 부질 없어요. 안되요. 하잖은 닝겐은 아무것도 하지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