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한달, 일초라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1 - 세계의 질료 본문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세계를 더 이상 신과 신화에 의지해 세상을 설명하지 않게 된 것은 당시 그리스의 사회적 변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당시 그리스는 부유한 영주와 농민들로 이루어진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속에서 장인, 상인, 기술자와 같은 새로운 계급이 탄생함에 따라 기술혁신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신의 징벌로만 이해됐던 질병을 하나의 기술인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됨으로써 더 이상 신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또한 당시 그리스가 처해있던 혼란스러웠던 사회상과 이로 인해 발생되는 모순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철학자들의 열정에 불을 붙였다.
우주를 물이라는 기본 원소로 설명하고자 했던 탈레스의 방식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상황 속에서 싹틀 수 있었다. 탈레스의 이론은 이전의 그리스 학자들의 의견과 비교해 봤을 때 독창적이다. 이전의 그리스 학자들은 신과 인간이 같다는 믿음 아래 신과 신화를 통해서만 세계를 조망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탈레스는 신이 아닌 물이라는 원소를 중심에 둠으로써 세계를 동일하고 단일한 체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물질에 기초해 세상을 조명함으로써 좀 더 엄밀하고 과학적인 분석틀을 제시했다. 물론 탈레스의 이론이 신과 신화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이전의 학자들과 완전히 결별하지는 못했지만, 탈레스의 이론이 물질과 과학을 통해 세상을 분석하고자 하는 현대 철학 사상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겠다.
탈레스의 이론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아낙시만드로스와 대립하게 된다. 이 대립은 탈레스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생각에 근거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적 요소가 무엇이냐에 대한 합리성을 따지는 논쟁이었기에 의미가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의 구성성분을 흙, 물, 불, 바람 등 네 가지 원소로 구분하고, 이것들의 다양한 속성이 자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 작용하고 대립하는 과정을 설명해 낸다.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해 탈레스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복잡한 설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많은 학자들이 탈레스 대신 최초의 철학자라는 이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주의 궁극적인 원천과 만물의 기본적인 구성성분을 아페이론(apeion)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이를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앞서 말한 사원소의 대립과 작용 속에서만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가 지각될 수 없지만 지각할 수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를 가정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후 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한 완벽한 요소 또는 존재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은 그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에 의해 비판받는다. 그는 공기를 모든 요소 중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공기는 압축되고 증발되며, 데워지고 차가워지며, 두터워지고 엷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신비스럽고 지각할 수 없는 스승의 아페이론에 대한 반발이자, 철학을 다시 일상적 경험의 질서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의 성과는 그리스의 고대 신화와 전설을 넘어 나가 현재 우리가 말하는 철학과 과학의 세계로 나가는 토대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등의 좀 더 급진적 발전이 나타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의 논쟁과 생각의 전개를 통해 스스로를 재해석하고 재창안 하는 서구 철학의 전통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서양 철학의 중요한 요소인 변증법과 비독단주의를 예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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